장로회주의 정치의 원리와 실제
26.06.05

장로회주의(Presbyterianism) 정치는 교인들이 선출한 장로와 목사가 당회, 노회, 총회라는 민주적 회의체를 구성하여 교회를 이끌어가는 정치 시스템이다. 이 제도는 칼뱅이 제네바에서 기틀을 마련하고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에 도입함으로써 오늘날의 장로교회로 확립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는 특정 인물이 창안한 사상이 아니라, 정확무오한 성경의 권위에서 비롯된 원리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는 장로정치의 외형은 갖추어져 있으나, 그 정신을 뒷받침할 신학적 성찰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개혁자들이 남겨준 전통을 지식으로만 소유하는 단계를 넘어, 성경이 보여주는 교회 정치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적 기초: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진 장로제도

장로(長老)란 말은 헬라어 '프레스뷔테로스(πρεσβύτερος)'에서 비롯된 것으로, 원래 '나이든 자' 혹은 지도자적 역할을 하는 '원로'를 가리켰다. 성경에는 출애굽기 3장에 '장로'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며,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도 장로들은 성이나 마을의 대표로서 중요한 일들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장로제도는 신약교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바울은 1차 선교여행 후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웠으며(행 14:23), 에베소 장로들에게 "성령이 그들을 감독자로 삼으셨다"고 선언했다(행 20:28). 베드로 역시 자신을 사도인 동시에 "함께 장로 된 자"(벧전 5:1)로 칭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감독들과 집사들"의 존재를 전제하였고(빌 1:1), 디모데에게는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은 사실을 상기시켰다(딤전 4:14). 이처럼 사도행전은 단순히 복음 전파의 기록이 아니라, 장로정치 체제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실 뿐 아니라 교회 정치의 기초까지 제공하신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장로정치 실천을 위한 네 가지 선이해

장로정치를 바르게 실천하려면 네 가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첫째, 공교회성이다. 일반적으로 '교회'라 하면 지교회를 떠올리지만,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등은 모두 노회 단위의 교회였다. 누가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행 9:31)라고 기록하면서 여러 지역에 흩어진 교회들을 단수로 표현했다. 이는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으나 영적으로는 완전히 하나인 공동체를 묘사하기 위함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보이는 교회 역시 복음 아래에서 보편적"(25장 2항)이라고 선언한다.
둘째, 직분과 규범에 대한 이해다. 종교개혁은 단지 잘못된 교리의 개혁만이 아니라 무너진 교회 질서를 세우는 운동이었다. 칼뱅은 1541년 제네바 교회법을 제정하였고, 존 녹스는 1560년 제1치리서를, 앤드류 멜빌은 제2치리서를 남겼으며,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도르트 질서를 만들었다. 필립 샤프는 제네바 교회 규범을 "칼빈주의 장로정치의 기초가 되는 헌법"으로 평가하였다. 이 교회 규범들은 인간이 만든 우연적 규범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시기 위해 명령하신 실정법이라 할 수 있다.
셋째, 장로의 선출과 장로제에 대한 이해다. 장로는 성도들의 권리 행사에 의해 세워진다. 사도행전 14:23의 '택하여'라는 단어는 '손을 뻗다', 곧 '거수로 투표하다'는 뜻으로, 회중이 직접 선출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그러나 선출된 이후의 장로는 신자들의 뜻을 대변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야 한다. 장로제는 평등성(equality), 자율성(autonomy), 연합성(unity)을 핵심 원리로 삼는다. 

넷째, 회의를 통한 치리에 대한 이해다. 장로회주의는 교회의 결정권을 개인이 아닌 회의체에 두기 때문에 당회, 노회, 총회가 중요한 사항들을 결정하여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1장 1항은 사도행전 15장을 근거로 "교회의 더 나은 정치와 교화를 위하여 총회가 있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예루살렘 공의회: 장로정치의 성경적 실천 모델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는 장로정치 실천의 가장 생생한 모델이다. 안디옥 교회에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거짓 가르침이 일어나자, 바울과 바나바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논쟁을 벌였다. 하나님의 진리가 공격받을 때 침묵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비롯한 몇 사람을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파송하였고, 예루살렘 총회가 소집되었다.
총회에서는 먼저 많은 변론이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이방인의 회심과 이신칭의의 원리를 말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를 증언하였다. 총회 의장 야고보는 이 모든 발언을 청취한 후 아모스 9:11~12을 인용하여 이방인 구원이 이미 예언된 사건임을 확증하고 결론을 내렸다.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행 15:19)라는 야고보의 말은 개인의 견해가 아니라, 치열한 토론을 거쳐 모아진 공의회 전체의 최종 결론이었다.
예루살렘 총회는 공식 결정문을 작성하고 유다와 실라를 파송하여 안디옥과 수리아, 길리기아 지역에 이를 전달하게 하였다.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 가니라"(행 16:5)는 말씀은 올바른 총회의 결정이 교회의 하나 됨과 성장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제임스 배너만은 이 공의회에서 "최고의 교회 법정 개념을 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고 논증하였다.


하회는 상회에 복종해야 한다

이상의 논의에서 장로회주의 정치의 구체적인 원리들을 정리할 수 있다. 직분자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보편적 인격을 갖추어야 한다. 치리는 일인 독재가 아닌 복수 지도력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로서 존경받되 치리하는 장로와 함께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 모든 권위는 그리스도의 통치에 예속된 대리적 권위이므로, 모든 사안은 성령의 조명 아래 그리스도의 뜻에 비추어 판단되어야 한다. 노회의 시찰을 통한 상호 점검으로 영적 건강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는 개교회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보호하는 안전장치다. 가르치는 장로와 치리하는 장로는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성도들을 목양해야 하고, 장로는 구역을 맡아 심방과 권면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회는 상회에 복종해야 한다. 조지 길레스피는 "더 작고 하위의 교회 회의들은 더욱 크고 상위의 회의들에 종속되고 다스림을 받는다"고 명시하였으며, 찰스 핫지도 "교회는 작은 단위가 큰 단위에 복종하고, 큰 단위가 전체에 복종한다는 점에서 하나"라고 강조하였다.
장로정치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수단이 아니라 교회를 보호하고 세워주는 안전장치이자 주님이 주신 선물이다. 우리가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이 보배로운 유산을 지식의 창고에서 꺼내어 교회 안에서 실천적으로 구현할 때, 비로소 한국 장로교회는 성경적이고 건강한 교회로 든든히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 위 글은 2026. 5. 19(화) 합신총회교직자수련회 특강을 요약한 글로써, 2026. 5. 30(토) 제 961 호 기독교개혁신보에 게재되었다. 

https://www.re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32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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